민간전민 텔레비전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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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전민텔레비전공사
1996 Formosa TV Chinese title.png
한국명 민간전민전시 고분유한공사(주식회사)[1]
한자표기 民間全民電視股份有限公司
영문표기 Formosa Television Inc
약칭 民間, FTV
방송 영역 중화민국의 기 중화민국 전역[2]
창립일 1996년 3월 27일
개국일 1997년 6월 11일
본사 중화민국의 기 중화민국 신베이시 린커우 구
웹사이트 http://www.ftv.com.tw/

민간전민 텔레비전 주식회사(중국어: 民間全民電視公司, 영어: Formosa Television Inc, FTV)는 중화민국텔레비전 방송국이다. 정식 명칭은 민간전민전시 주식유한공사(民間全民電視股份有限公司)이고, 약칭은 민시(民視)이다. 이 방송국은 중화민국에서 노삼대(老三台)[3] 다음으로 설립된 방송국이자, 중화민국에서 제일 처음 설립된 지상파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이다. 이 방송국의 메인 채널은 VHF III 밴드를 사용해 송출했으며, 결국 이 방송국은 중화민국에서 마지막으로 VHF를 사용했던 방송국이다.[4][5]

설립 초기에는 시청률이 낮았지만, 드라마나 예능 등의 프로그램에서 참신한 프로그램이나 참신한 소재가 쓰이게 되거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등으로 점차 시청률이 높아져, 현재는 중화민국의 텔레비전 방송국 중에서 시청률이 높은 편에 속하고 있다. 이 방송국은 공평과 중립을 방송의 원칙으로 하고 있어, 뉴스의 신뢰성에서는 지금은 다른 기구로 재편되어 없어진 행정원신문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고 있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민주당 진성 지지층 중의 몇몇을 중심으로, 이 민간전민 텔레비전 주식회사 및 자유시보의 탄생 배경과 개국 이후 기능의 효능이 주목받으면서, 독일식의 언론개혁 해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짜뉴스 금지법 등과 함께 언론개혁의 해법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이 방송국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방송국의 형태 및 설립 방식 등이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모 250만 도시를 책임지라고 했더니 징징대며 장풍쇼쇼쇼 찍는 무능한 시장의 백신사기건에 관련한 보도로 유명해졌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기존의 방송국들인 CTV(中視), CTS(華視), TTV(臺視)는 당시에 모두 중국 국민당 또는 중화민국 대만성, 아니면 중화민국 행정원의 특정 부서에서 운영하던 방송국[6]이었고, 민시 창립 이전 당시 상황에서 일당 독재는 민주진보당의 창당과 대만 계엄령의 해제로 인해서 해소되었으나, 중국 국민당이 여전히 일당 우위의 상황에서 당연히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이들 방송국은 친 국민당 성향을 띄고 있었다.[7]

이런 상황에서 국민당에게 유리한, 보수 친화적인 대만의 언론 환경 속에서 당시 민주진보당 주요인사들은 자신들의 시각을 전해줄 방송매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민진당의 원로인 차이통룡(蔡同榮), 리전위안(李鎮源)[8], 리잉위안(李應元), 우슈민(吳樹民)의 4명이 모여 1993년 8월 6일 "민간전파고분유한공사(民間傳播股份有限公司)"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1994년 1월 28일, 중화민국 정부에서 '제4 지상파 방송 개방'을 발표하자, 민진당계 인사들은 자신들이 창립한 '민간전파고분유한공사'를 방송 사업자 후보로 신청하였고, 1995년 6월 16일에 6개의 사업자 후보중 '민간전파고분유한공사'가 최종선정 되었다. 이후 허가와 방송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1997년 5월 5일 오후 7시에 뉴스 채널(民視新聞台)을 개국하고, 1997년 6월 11일 오후 6시에 메인 채널(民視無線台)의 정식 방송을 시작하였다. [9][10]

그 이후에도 시청률이 오르면서 유료방송용 채널들을 개국시켜 나감과 동시에, 2004년 5월 24일에는 대만의 다른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국들과 함께 지상파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하였고, 2010년 10월 7일에는 고선명 텔레비전(HD) 채널(民視HD台)을 개국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만의 다른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국들과 함께 아날로그 지상파 텔레비전의 방송을 종료하여 디지털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으로 완전히 전환하였다. 2016년 7월에는 기술 발전으로 대만의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의 HD 화질 송출폭이 3개 채널로 넓어지자, 메인 채널과 사계 채널(현재의 제일 채널)의 송출 화질을 HD화질로 전환 및 HD 채널의 대만 채널 전환을 단행했다. 2018년 1월 1일부터는 24시간 방송 체제로 전환하였다.

여기서 보이는 바와 같이, 민시는 당시 민주진보당의 시각에서 사실을 전달하거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정파색을 띄더라도 사실의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는 보도를 하지 않고, 보수 친화적이던 대만의 저널리즘에 대항하여 민간의 대안 언론이 아닌, 민진당 직영 정규 언론을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민진당과의 높은 관련성을 통해 사실상 그렇게 만든거고, 실상은 민진당과의 관련성만 높은 민간 기업의 형태를 띈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11][12]

그러다보니, 민주주의의 진전 정도 및 환경과 근대 이후 역사 등에서 한국과 유사성을 상당히 띄고있는 대만의 환경 특성 상,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 한국의 언론개혁 해법으로 이 방송국의 설립 과정이 진성 지지층에서도 소수에서나마 주목을 받는 것이다. 송영길은 대만에서 좀 연구해봤다면서 왜 민시에서 안 배워오는거냐 제발 송영길은 대만 민시에서 제발 좀 배워서 언론 만들어라 제발... 차이통룡 이 분이 이 부분에서는 한국의 민주당 내의 다수의 반문 정치인 및 초선적보다는 안목이 훨씬 낫네

다만, 한국형 민시의 창립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큰 고비가 있는데... 그것은 오렌지 등을 비롯한 민주당을 망친 반문 정치인의 청산을 통해 당을 정화하고 시스템을 복원한 다음에 이낙연 후보를 대통령으로 올리고 제5지상파 방송 개방을 실시해서 거기서 민주당 중심 컨소시엄이 만들어지고 합격까지 해서 면허를 교부받아야 한다. 그 컨소시엄은 당연히 친문-친이낙연으로 이어지는 이들로만 구성되어야하기까지 하니, 현재로써는 가능성이 일정 이상 있으나, 복잡하다.

산하 채널[편집 | 원본 편집]

디지털 지상파 TV방송 및 유료방송 송출 채널[편집 | 원본 편집]

  • 민시 메인채널 : 이 방송국의 꽃 그자체인 채널. 상기한대로 이 방송국의 뉴스채널보다 약 1달 늦게 개국했다. 이름 그대로 아날로그 지상파 TV에서 시작해 디지털 지상파 TV까지 쭉 송출을 이어가고 있다.
  • 민시 뉴스채널 : 이 방송국의 맏이. 가장 먼저 개국했다. 본래는 케이블TV 보도전문 PP였다가 디지털 지상파 TV방송의 개시와 함께 지상파로도 송출하게 되었다. 2016년 이전에 같이 SD로 송출하던 다른 채널은 모두 HD 화질로 전환했으나, 이 채널만큼은 전환하지 못했다.
  • 민시 제일채널 : 개국 당시엔 FMTV라는 디지털 지상파 TV방송용 교통정보 전문 채널이었다가, 2016년에 HD 화질 지상파 TV방송 개시 이후 2017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하게 되면서,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 민시 대만채널 : 이름은 본래 개국 당시에는 민시 HD채널이었다가 민시사계대(민시 사계채널)로 한번 탈바꿈한 것을 거쳐, 2016년 11월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서 2016년 7월 이후로 대만에서 3개 채널까지의 HD화질 송출 허용폭이 넓어지기 이전에는 여기만 유일하게 HD방송을 했었다. 즉, 개국 당시부터 2016년 7월까지는 HD용 채널이었으며, 애초에 이전 이름 중 하나인 '민시 HD채널'에서 보이듯이, 이 채널의 개국 목적은 대만에서의 디지털 지상파 TV방송 초기의 민시의 HD용 디지털 지상파 TV채널에 있었다.

인터넷에서만 송출하는 채널[편집 | 원본 편집]

아래는 인터넷을 통해 송출하는 채널로써, 민시에서 제공하는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라이브를 통해서만 시청 가능하다.

  • 민시 드라마채널 : 민시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인터넷을 통하여 1년 365일 연중무휴로 방송하는 채널이다.
  • 민시 종합예능채널 : 민시에서 방영되었던 예능 프로그램을 인터넷을 통하여 1년 365일 연중무휴로 방송하는 채널이다.
  • 민시 여행채널 : 민시에서 방영되었던 여행/관광 프로그램을 인터넷을 통하여 1년 365일 연중무휴로 방송하는 채널이다.

이미지 송[편집 | 원본 편집]

민시는 개국 준비과정에서 대만에서 환취가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해진, 대만에서 주로 쓰이던 기층언어인 대만민남어, 객가어, 대만 원주민어 등의 언어를 사용해 대만 정체성을 곡에 담던 신보도강악대를 섭외해, 지혜의 빛이라는 이미지송을 만들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13]

각주[편집 | 원본 편집]

  1. 고분유한공사는 중국어에서 주식회사를 의미한다.
  2. 여기서 중화민국 전역이란, 대만 섬과 그 부속도서, 펑후 제도, 진먼 섬과 그 부속도서, 마쭈 열도로 이루어진 중화민국 자유지구를 의미한다.
  3. 후술하는 기존의 방송국들인 CTV,CTS,TTV를 의미한다. 이들이 중화민국의 텔레비전 방송국 중에서 개국일이 빨라서 오래된 방송국 상위 3개를 의미해서 이런 별칭이 생겼다. 개국이 빠른 순서대로 CTS(1962년 교육 텔레비전으로 개국, 1971년 현재의 이름으로 재개국. 이로 인해 TTV, CTV 다음으로 치는 경우가 흔함.), TTV(1962년 쌍십절), CTV(1969년 10월) 순이다.
  4. 중화민국의 공영방송인 공시(公視, 公共電視文化事業基金會)는 단일 방송국으로써는 중화민국 최초로 UHF를 사용한 방송국이다. 다만, 채널 단위로 치면 CTS의 두번째 채널인 CTS 교육체육문화채널이 최초이다. 이쪽은 1983년 9월에 개국했다.
  5. 물론, 이는 중화민국에서 디지털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2012년 이후에는 모든 방송국이 UHF 대역의 멀티플렉스만을 사용하게 되어, 소용없게 되었다.
  6. 당정분리가 안 되었던 리덩후이 집권 이전 대만의 모습이 연출해내던 결과였으며, 대만에서의 당정분리는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위로부터 하향식으로 실시되었다. 이것이 완료된 때는 리덩후이 시기였고, 이것이 완전히 정착한 것은 천수이볜의 대만 총통 당선이었다.
  7. 중화민국의 공영방송이던 공시(PTS, 公視, 公共電視文化事業基金會)는 1980년 행정원신문국의 제안으로 겨우 여러 채널 내의 프로그램 블록 형식 및 판매용 비디오 형식으로 개국되었다가 1994년에 블록 방송 중단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편되기 시작해, 1998년 7월 1일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독립된 채널(대만 제2의 UHF 대역 채널 형식)로서 재개국한다.
  8. 사업자 선정 이후인 1996년 사실상 몸담던 민진당에서 떨어져나와 민국당을 창당하는 창당발기인에 끼게 되나, 그 이후 천식과 폐렴, 골수이형성증후군, 백혈병 등과 투병하다 2001년에 끝내 서거한다.
  9. 李小芬,〈李總統按鈕 民視開播〉,《中國時報》1997年6月12日22版
  10. “이 방송국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대만연의의 차이통룡 편의 46분 15초에서 47분 40초에도 위 세 문단의 사실을 간략히 언급한 대목이 있다.”. 《www.youtube.com》. 2014년 1월 5일. 
  11. 대한민국의 대안언론 운동은 모두 실패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친목으로 인해서 엄청난 타락을 겪게되어 소위 '정치자영업자'처럼 된 사람들이 태반이고 대안언론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져, 진성 민주당 지지층을 대변하던 뉴비씨마저도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 거의 9달이 다 되었고, 팟캐스트는... 복잡해서 생략하지만, 타락한 정도가 심각한 경우가 태반이니 말 다한 셈이다.
  12. 지금은 어찌됐는가 모르지만, 한때는 민진당에서 이 방송국의 지분을 어느 정도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당에서 자본관계를 일정 정도 보장해야 하니 한국형 민시의 창립과 동시에 정당법을 입법을 통해 고쳐야 할 부분이 존재할 수도 있다.
  13. 발매된 곡은 아니나 자세한 정보를 담고자 민시 문서의 단락에는 간략히 다루되, 독립적인 문서로 분리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