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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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僞善)은 실제로는 착하지 않은데 착한 척하는 행위이다. 반대로 실제로는 나쁘지 않은데 나쁜 척하는 행위를 위악이라고 한다. 위선은 꾸며진 선이 실은 악이었음이 폭로되어야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선이 궁극적으로 의도를 보는 이상, 악한 의도로 선한 결과를 창출했을 때 이를 선을 실행했다고 봐야 하는지 문제가 생긴다. 거꾸로 온갖 입바른 소리는 다 늘어놓았는데, 막상 언행불일치가 드러나면 금세 내로남불의 화신인 것마냥 위선자로 비난받기 십상이다. 단 하나의 오점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위선이라는 비난은 사람들이 선에 대해서 침묵하게끔 하는 풍조를 만들기도 한다.

위선은 폭로되기 전까지 선인가?[편집 | 원본 편집]

가령 어떤 사람이 평생 타인을 얕잡아보고 깔보며 업신여기지만, 겉으로 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로 살다가 죽었다고 치자. 이 사람과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위선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길 것이다. 또 가령 어떤 사람이 세상을 저주하며 인류 멸망을 마음속에 강렬하게 바라고 있지만,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고 치자. 역시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의 실체를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행위를 통해 유추만 할 수 있을 뿐, 누구도 진심을 알아챌 수 없다. 위선의 문제가 골치 아픈 이유는 가면 속 얼굴은 흉악하게 찌그러져 있는데, 깔끔한 가면이 벗겨지지 않는 한 진짜 얼굴은 그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모른 채로 가면이 진실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끝끝내 드러나지 않는 악은 결국 선이 되는가? 세상에 폭로된 악이어야 위선이라 부를 수 있는가?

위선자라는 비난의 남용[편집 | 원본 편집]

사람을 해부하더라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이상, 진의는 추측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려운 이웃을 돕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살아가며 어려운 형편에도 화도 잘 내지 않는 사람이 분명히 세상에 존재한다. 이 사람이 선행을 할 때마다 이를 지켜보는 타인이 그 선행을 업신여기며 위선자 짓 좀 그만 해라고 한다면 누가 감히 선행을 하려고 나설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서민을 위한다고 하는 사람이 예산 낭비를 없애기 위해 이익단체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고 치자. 여기에 열 받은 이익단체가 그 사람이 위선자이며 서민을 위한 예산을 삭감했다고 떠들어대어 많은 사람이 거기에 속아 넘어가면, 앞으로 선심성 예산안에 반대하기 훨씬 더 어려워진다. 위선자라는 비난은 정적(政敵)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무기가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위선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축소해석[편집 | 원본 편집]

그러므로 실생활에서 위선이라는 비난은 위선의 뜻을 대개 협소하게 해석하여 쓰이는 편이다. 의도를 볼 수 없으므로 의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중잣대[편집 | 원본 편집]

대체로 타인에게 들이대서 비난을 가했던 잣대를 그 자신에게 똑같이 들이대었을 때 마찬가지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면, 그는 위선자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 혹은 타인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자신에게 똑같이 들이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켕기는 사람은 역시 위선자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 타인을 함부로 비난해선 안 된다. 그런데 꼭 비난 받을 짓만 골라서 하는 놈이 존재한다. 과거를 수시로 부정하고 역사개변하는 놈들이 그러하다.

위선자 목록[편집 | 원본 편집]

  • 제국주의자
  • 히틀러
  • 마오쩌둥
  • 홍위병
  • 유비
  • 기레기(대놓고 악이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다)
  • 소크라테스 사형 판결한 놈들